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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게임랭킹 충남 금산에 중부권 거점으로 운영되는 국립자연휴양림이 문을 열었다.
산림청은 3일 금산군 남이면에 조성된 국립금산자연휴양림에서 개장식을 가졌다.
금산자연휴양림은 대전·충청 도심권 내 휴양·힐링 공간을 테마로 2021년부터 4년에 걸쳐 조성됐다.
숲속의집 13개동 13실, 연립동 5개동 10실 등 23개실의 숙박 시설과 방문자 안내센터, 60면 규모 주차장 등을 갖추고 있다.
휴양림에는 목재펠릿 보일러와 태양광 가로등, 모듈러하우스 등을 설치해 운영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했다.
숙박시설 내 가구는 국산목재 사용으로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인호 산림청장은 “금산자연휴양림이 휴양 수요가 많은 중부권 거점 산림 휴양시설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최상의 산림 휴양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 발전에도 기여하는 휴양공간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산자연휴양림은 자연휴양림 통합예약시스템 ‘숲나들e’를 통해 예약·이용할 수 있다.
전남 영암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 A씨(30대)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즉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왜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회복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 의료진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해 불안이 컸다. A씨는 동료로부터 전남 이민·외국인종합지원센터 콜센터로에 요청하면 통역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전화를 건 A씨는 모국어인 크메르어 통역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말이 통하지 않아 두려웠는데, 모국어로 설명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통역이 없었다면 수술을 결정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도가 운영 중인 이민·외국인종합지원센터가 외국인 주민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핵심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1일 전남도에 따르면 이 센터는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총 4379건의 상담을 처리했다. 한 달 평균 600건이 넘는다. 상담은 생활·비자·노동·의료 등 정착과 직결된 분야 전반을 망라한다.
상담 언어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베트남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캄보디아어, 네팔어 등 총 5개 언어로 운영해오다 7월부터는 태국어, 필리핀어, 우즈베키스탄어, 스리랑카어까지 확대됐다.
언어별로는 베트남어가 1364건(31.1%)으로 가장 많았고, 캄보디아어 537건(12.3%), 인도네시아어 448건(10.2%)가 뒤를 이었다.
센터는 외국인들의 접근성 강화를 위해 운영 시간도 확대했다.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고, 월·수요일은 오후 8시까지 연장한다. 토요일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센터는 상담사 10명 등 총 13명이 운영을 맡고 있으며, 상담사 대부분이 전일제로 근무하고 있다.
전남은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전남에 등록된 외국인은 6만296명으로 전체 인구의 3.38%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는 3만8344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국적별로는 베트남(31.9%), 중국(19.1%), 인도네시아(8.9%) 순으로 많다.
전남도는 고용노동부가 2024년 외국인노동자 소지역센터 4개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자 지난해 7월부터 도 자체 예산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중앙정부의 국비 지원 재개를 지속적으로 건의 중이다.
윤연화 전남도 인구청년이민국장은 “지역 차원의 이민정책을 면밀히 점검하고, 중앙과 지방이 함께하는 지원 체계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3일(현지시간) 열린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은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의 행사였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경제적 지원군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군사적 우군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행사 내내 존재감을 과시했다.
중국 측은 다자 외교 무대에 처음 데뷔한 김 위원장을 각별히 예우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8시쯤 톈안먼 광장에 도착해 중국 인민해방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붉은 카펫을 따라 입장했다. 옅은 황금색 넥타이에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행사에 초청된 26개국 정상 중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보다 먼저, 뒤에서 두 번째로 입장했는데 순서와 위치에 민감한 중국의 관례를 고려하면 특별 대우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 및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의 인사 자리에서도 두 손을 맞잡으며 친분을 과시했고 시 주석 역시 다른 정상들과 달리 두 손으로 화답했다. 기념 촬영 때도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의 왼편에 선 펑 여사 옆에 섰다. 시 주석 오른편에는 푸틴 대통령이 자리했다.
톈안먼 광장 뒤편 돤먼을 통해 성루에 오를 때에도 푸틴 대통령, 시 주석, 김 위원장이 행렬의 선두에 섰다. 중국의 우호국인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 카자흐스탄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 동남아시아 대표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의 훈 마네트 총리 등은 그 뒤를 따랐다.
오전 9시 개막한 열병식에서 시 주석은 톈안먼 성루 중앙에 앉았고 김 위원장은 그의 왼편, 푸틴 대통령은 오른편에 자리해 행사를 지켜봤다. 66년 만에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 장면’은 수십분간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열병식 도중 김 위원장이 시 주석 쪽으로 몸을 기울여 대화하는 모습이 중국중앙(CC)TV 카메라에 포착됐다.
북·중·러 정상은 열병식이 끝난 오전 10시30분쯤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오찬 리셉션에 나란히 참석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오후 1시30분쯤 푸틴 대통령과 같은 차를 타고 국빈관 댜오위타이로 이동해 양자 회담을 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쿠르스크 전투에 파병해 해방을 도왔다”고 언급하며 양국 관계의 우호성을 강조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북한군 파병에 대한 찬사에 감사한다”며 “양국 관계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6년 넘게 제약을 받아온 김 위원장의 외교 행보는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러·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계기로 러시아와 군사 동맹에 가까운 밀착을 보였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전범 국가와 손잡고 유엔 제재를 받는 불량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이번 열병식을 통해 경제적으로 90% 이상 의존해 온 중국, 군사적으로 밀착한 러시아의 지지를 확인하면서 새로운 외교적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의 ‘은둔의 지도자’ 이미지를 사실상 벗어던진 셈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열병식이 시작되기 전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만나 북한으로 초청했다. 3시간가량 이어진 오찬 리셉션에서도 여러 국가 정상들과 교류했을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도 이번 열병식의 실질적 승자는 김 위원장이라고 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 정상이 나란히 있는 모습은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함께 3대 강국인 듯한 환영을 연출했다”며 “이번 전승절 열병식의 승자는 김정은”이라고 평가했다.
전날 전용열차로 베이징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당일 가장 먼저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았다. 이때 이용한 의전 차량 번호판은 ‘7·271953’이었는데, 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인 1953년 7월27일을 연상시키는 숫자로 중국과의 반미 연대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녹색 바탕의 수중촬영 화면 속에 새우잠을 자듯 모로 쓰러져 있는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하반신은 신발과 작업복에 허벅지와 둔부까지 윤곽이 뚜렷했지만, 상반신은 진흙 등으로 덮여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화산재에 당한 폼페이 시민들이 그렇듯 물로 가득 찬 해저 탄광의 갱도에서 발견된 광부의 주검은 83년 전 사고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들이 겪었을 생의 마지막을 생각해본다. 갱도가 무너지며 바닷물이 삽시간에 들이차자 극한의 공포에 빠졌을 것이다. 얼마간 숨을 참다가 견디지 못해 물을 들이켜다 질식했을 것이며, 산소부족으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지난달 2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의 수심 43m 바다 밑에서 김경수, 김수은 잠수사가 왼쪽 대퇴골(허벅지뼈), 왼쪽 상완골(어깨와 팔꿈치를 연결하는 뼈)과 왼쪽 요골(팔꿈치와 손목을 연결하는 뼈) 등 3점을 발굴했다. 하루 뒤인 26일에는 사람의 머리뼈를 수습했다. 잠수사가 플라스틱 상자를 열자 아래턱 뼈가 사라지고 탄진으로 거무스레해진 두개골이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1942년 2월3일 ‘조세이 탄광’이 사고로 수몰될 당시 작업 중이던 183명(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 중 한 명일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6차례에 걸친 잠수 수색 끝에 희생자 유골이 83년 만에 물 밖으로 나온 것이다.
유골 발굴 작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사고 지점이 해안에서 수백m 떨어진 데다 해저 갱도여서 접근이 쉽지 않았고, 탄부들이 수몰된 장소도 특정되지 않았다. 육상에서 해저로 진입하는 갱도는 사고 후 곧바로 폐쇄됐고, 콘크리트와 흙으로 덮여 입구가 어디인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 시민들의 숭고한 인간애에 바탕한 헌신이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사고 30여년이 지난 1976년 우베시의 향토 사학자 야마구치 다케노부가 지역 학술지에 ‘조세이 광산 재해’에 관한 글을 발표해 이 사고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인권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지적했다. 마음이 움직인 이노우에 요코 등 시민들이 1991년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을 결성해 추도비 건립, 증언·자료 수집과 편찬 사업을 진행했다. 한국의 유족들에게 연락해 유족회가 구성됐고 함께 매년 추도식을 열었다. 2013년 추도비를 건립한 뒤 사업을 일단락하려다 유족들의 간절한 호소에 따라 유골 발굴을 결의했다. 당시만 해도 이 어려운 일을 시민들만의 힘으로 해낼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새기는 모임’은 여러 차례 일본 정부에 발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직접 나서기로 했다. 2024년 갱도 입구 토지 소유주인 우베시와의 교섭을 마무리짓고 갱도 입구를 찾기 위한 굴착 공사에 들어갔다. 3차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일본과 한국에서 도합 5억원 가까운 성금이 모였고, 자발적으로 공사를 맡겠다는 현지 업체가 나타났다. 수중탐험 전문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가 발굴 작업을 자원했으며 현지의 토목·항만공사 전문가, 수중작업 전문가들이 속속 힘을 보탰다. 4월부터 한국인 잠수사 부부가 합류했다. 한국 유족들과 시민들이 매번 현지를 방문해 발굴단을 응원했다. 양국 시민들이 마음을 모으니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기적처럼 풀렸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간의 정상회담은 과거사는 건드리지 않은 채 미래 협력만 논의돼 아쉬움을 남겼다. ‘한·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얄궂은 프레임이 이 대통령의 운신을 제한했던 것 같다. 그 이틀 뒤 과거사는 외면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외침이 조세이 탄광의 앞바다에서 울려 퍼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세이 탄광 유골 발굴은 이국에서 뜻하지 않게 숨진 이를 고국에 돌려보내는 인도주의적 사업이다. 2004년 한·일 정상회담 합의를 바탕으로 실무협의체가 구성됐고, 2008~2010년 423위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된 전례도 있다. 지바현 관음사에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6인의 유골이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유골 발굴 및 봉환은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해원(解寃)’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한·일 역사 화해를 재시동하는 유효한 접근법이 될 수 있다. 한·일 시민이 연대해 입구를 열었으니 양국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는 것은 큰 부담도 아니다. 한·일 정부가 조속히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유골 수습과 봉환에 나서기 바란다.<p><span><a href="https: